중용(中庸)에 대하여
- 날짜
- 2023.03.14
- 조회수
- 412
- 등록부서
- 문화예술과
-이기주의『말의 품격』 중에서
사람들은 날마다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의 주장이 대립되었을 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절충과 협상의 방법으로‘중용(中庸)’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중용’은 단지 기계적인 중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저 단순히 중간 지점에 눌러앉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위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유연한 흔들림(?)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협상과 타협의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어떻게 존재하겠습니까.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향해“당신을 이해할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란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갈등과 다툼 앞에서 서로 이해하고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리고 그 사실을 업신여기지 않을 때 오해의 가능성은 도리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의 싹이 돋아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오늘도 당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갈등에 대하여 부디 포용하시고 너그러운 이해가 깃드시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사람들은 날마다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의 주장이 대립되었을 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절충과 협상의 방법으로‘중용(中庸)’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중용’은 단지 기계적인 중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저 단순히 중간 지점에 눌러앉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위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유연한 흔들림(?)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협상과 타협의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어떻게 존재하겠습니까.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향해“당신을 이해할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란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갈등과 다툼 앞에서 서로 이해하고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리고 그 사실을 업신여기지 않을 때 오해의 가능성은 도리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의 싹이 돋아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오늘도 당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갈등에 대하여 부디 포용하시고 너그러운 이해가 깃드시기를 바랄 따름입니다.